독일 베를린 출생으로, 풍부하고 서정적인 음색과 넓은 음역을 자랑하며, 어릴 때 오스트리아의 그라츠로 이주하여 그곳 음악원에서 성악을 공부하였다. 졸업 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의 배려로 바그너협회 장학금을 받으며 빈국립오페라극장의 연구생이 되었고, 1960년에는 빈국립오페라극장에서 볼프강 모차르트(Wolfgang Mozart)의 《피가로의 결혼 Le Nozze di Figaro》에 바르바리나 역으로 데뷔하였고, 이듬해에는 《마적》의 파르미나 역을 맡았다.
그후 1962년까지 바이로이트축제극장에서 빌헬름 바그너(Willem Wagner)의 오페라에 출연하였고 바이로이트·글라인드본·잘츠부르크·엑상프로방스·에든버러의 각 음악제에 출연하였다. 이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승승장구하여 1962년 빈국립오페라극장의 정식단원이 되었다.
1963년부터는 프랑크푸르트오페라극장의 단원을 겸임하엿으며, 1966년에는 베를린 도이치 오퍼로 옮겼다. 1967년에는 메트로폴리탄에서도 선을 보였을 뿐 아니라, 레코딩에서도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이 된 카라얀 지휘의 성악곡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였다.
1970년대 초반부터 뛰어난 소프라노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와 빌헬름 바그너, 볼프강 모차르트(Wolfgang Mozart) 등 폭넓은 레퍼토리로도 인정받았으며, 독일 및 이탈리아 작품에서 특히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였다.
* 영화 쇼생크 탈출’ 중에는 ‘피가로의 결혼’ 중 이중창 ‘산들바람이 부드럽게…’가 등장하는 명장면이 있다. 당시 독백으로 주어진 대사는 ‘노래부르는 이탈리아 여인네들이 누군지는 알 바 아니었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그 노래에 실려 쇼생크 밖으로 자유롭게 날아가고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영화에 삽입된 노래의 주인공들은 ‘이탈리아 여인네들’이 아닌 베를린 태생의 군둘라 야노비츠와 루체른 태생의 에디트 마티스였다.
감독도 분명히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지만 대사는 일부러 그렇게 처리한 것이다. ‘아는 사람만 알고 미소 한번 지으라’는 감독의 위트였던 것이다. 위의 곡이 원래 담긴 녹음은 칼 뵘이 지휘하고 백작부인에 야노비츠, 수잔나에 마티스, 피가로에 프라이, 백작에 디스카우가 출연한 최고의 명반(DG)이다.
독일-오스트리아계 리릭 소프라노 분야에서 슈바르츠코프에게 왕관을 물려받은 사람이 야노비츠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인연이 있다. 슈바르츠코프는 23세 때 '파르지팔’의 꽃의 소녀를 불렀다. 그런데 야노비츠도 23세되던 1960년에 바이로이트에서 꽃의 소녀를 불렀다. 키리 테 카나와는 이보다 조금 늦은 27세 때 꽃의 소녀를 불렀다. 가장 뛰어난 ‘피가로의 결혼’의 백작부인과 ‘장미의 기사’의 마샬린으로 가는 첫 단계가 꽃의 소녀라고 주장하는 듯한 기묘한 예다.
위에서 소개했듯 베를린에서 태어난 야노비츠는 어릴 때 오스트리아의 그라츠로 이주해 그곳에서 음악원을 나왔다. 이후 바그너 협회 장학금을 받으며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의 연구생이 되었다. 이는 59년의 일로 모두 보석을 발견했다고 믿은 카라얀의 배려에 의한 것이었다. 다음해 ‘피가로의 결혼’의 바르바리나로 데뷔한 그는 앞서 말한 대로 1960∼62년까지 바이로이트에서 꽃의 소녀를 불렀다.
이후 카라얀의 막강한 후원으로 승승장구한다. 62년 빈 국립 오페라 극단의 정식단원이 되었고, 63년부터는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극장의 단원을 겸임했으며, 66년에는 베를린 도이치 오퍼로 옮겼다. 67년에는 메트로폴리탄에도 선을 보였다.
레코딩에서도 그는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로된 카라얀 지휘의 성악곡에 거의 모두 등장했다. 바흐 ‘마태 수난곡’, B단조 미사, 브람스 ‘레퀴엠’, 베토벤 ‘장엄 미사’, 하이든의 ‘천지창조’와 ‘사계’ 등이 그들이다. 한편 칼 리히터의 바흐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와 헨델 ‘메시아’를 명반의 대열에 오르게 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210love.com 발췌)